아무래도 무거운 내용이다 보니 책을 펼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들었다. 책을 열게 된다면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그저 나와 책. 이렇게 둘만이 내 방을 가득 차지했으면 하는 이상한 고집 때문에 그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 나는 오늘까지 이 책을 펼치지 않았다. 마침 나는 오늘 이 책을 열 수 있었다. 암막커튼으로 차단된 햇빛과 문밖의 불빛, 그리고 내 방에 있는 형광등과 조명만이 책에 쓰여진 글을 읽도록 도왔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단 두 시간 만에 나는 책의 마지막 줄을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꼼꼼히도 읽었다. 그토록 이 책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관련되어 있지 않은 죽음 뒤의 삶을, 가난 뒤의 삶을 보여준다.
특수청소부.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특수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는 지금도 누군가가 떠나고 세상에 남긴 흔적들을 정리하고 있을까. 그는 가난한 이가 주로 혼자 죽는 것 같다며, 그리고 가난과 외로움은 함께 온다며 우리에게 말한다. 수도가 끊기고 전력이 끊기며 가난한 이는 더 이상 일상을 살아갈 수 없다. 전력이 끊기는 날에 자살한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었어야 하는가. 우리가 그 ‘무언가’를 해주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까. 하루라도 더 살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전에 그를 찾는 이는 없었지만, 사후에 누군가는 그를 찾는다. 악취. 심각한 악취로 인해서 그들은 타인에 의해 찾아내어진다. 그들을 죽게 한 것은 누구인가. 작가도 이에 의문을 품고 있다. ‘무언의 권유 타살’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삶에 대한 압박에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스스로를 죽인다.
이 책에서 또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고양이다. 죽음을 맞이한 고양이를 그 주위에 옵션으로 함께하는 악취와 구더기들 그리고 파리 등을 처리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고 한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 따위는 없다. 더 높은 인간과 그를 섬겨야만 하는 낮은 인간이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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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평등하다. 아니,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은 동물을 죽인다.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들의 의지일 리가.
인간은 인간을 죽인다. 인간은 스스로를 죽인다. 그들의 의지인가?
악취가 나는 공간을 냄새의 흔적도 나지 않도록 깨끗이 해결하는 특수청소부의 삶을 나는 이 한 권의 책으로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냄새에 민감해지고 죽음에 민감해진 그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적어도 그가 책에 남긴 물음에 대해 고민해보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사랑하는 영민씨에게”.
죽음은 혼자가 되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이미 혼자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영민씨는 사랑받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죽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의 이후까지도.
사랑받는 삶을 베어버리지 말자.
자신의 것도, 타인의 것도 부디 베어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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